창원자유학교 1학기에 대해 모든 걸 한꺼번에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가장 평화로웠던 일주일에 대한 얘기로 1학기에 대한 얘기를 갈음합니다.
창원자유학교에서의 지난 1년을 돌이켜보았을 때 제게 가장 편안했던 시간이 농촌봉사활동을 갔던 4박5일이었습니다. 일하고 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진주 외곽의 시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엔 인터넷도 없고, 학생들은 이번에도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몰래 사용한 학생이 없진 않았습니다). 새벽에 학생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운동도 했고, 한창 더울 때는 쉬면서 책도 읽었습니다. 일할 수 있는 시간에 일하고, 일할 수 없는 시간에 쉬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양파 뽑기입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 밭에는 양파와 잡초가 섞여 있었습니다. 양파는 땅 속에 있고, 잡초가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다행히 양파의 줄기와 잡초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의 눈썰미는 있었습니다. 땅 위로 드러난 양파 줄기를 적당히 잘랐습니다. 그리고 양파를 뽑았습니다. 크기라고 할까요, 굵기라고 할까요? 씨알이라고 하나요? 다 달랐습니다. 큰 걸 뽑으면 기분이 좋았고, 작은 걸 뽑으면 아쉬웠습니다. 옷은 어느새 땀으로 다 젖었습니다. 제가 디스크가 있습니다. 허리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냥 땅을 기었습니다. 그게 더 편했습니다. 옷은 땀으로, 흙으로 더러워졌습니다. 땀으로 젖거나 흙이 묻으면 어떻습니까? 대충 빨아 입고 다음 날 또 땀으로 적시고 흙을 묻히면 될 일입니다. 미숫가루, 잊을 수 없습니다. 농장주인 되시는 분의 어머니께서 미숫가루를 한 주전자 타오셨습니다. 농사일이 온 몸에 뵌 분입니다. 그 주름 잡힌 얼굴에도, 살갗이 두꺼운 손등에서도 오래된 동네가 느껴집니다. 웃음 한 가득 먼저 넉넉하게 흘리시고, 미숫가루를 따라 주십니다. 날은 덥고, 땀은 흐르고, 적당히 달달한 미숫가루를 컵에 한 가득 부어 마십니다. 혹시 차례를 기다리다 자신은 먹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는 간절한 눈빛도 보입니다. 땡볕 아래였기에 더 맛있었을 겁니다. 일을 하다 마셔서 더 맛있었을 겁니다. 넘치게 풍족하지 않아서 더 맛있었을 겁니다. 미숫가루의 맛은 그날 하루 종일 입안에 남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 맛이 입안 어딘가에 남아 있습니다. 양파를 뽑기 전날, 마늘을 뽑았습니다. 적당히 흐리다가 비도 약간 내리는 날씨 속에서 양파를 뽑았습니다. 요령이 좀 필요했습니다. 잘못 뽑은 마늘은 땅속에 남고 줄기만 뽑힙니다. 그러면 땅속에 남은 마늘은 호미로 파내야 합니다. 마음이 급하면 마늘을 땅속에 남깁니다. 마늘을 뽑고 또 뽑다가 팔에 기운이 없어지니 마늘을 또 땅속에 남깁니다. 호미로 마늘을 찾아서 캐기가 좀 귀찮았나 봅니다. 학생들이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일이 다 끝나고, 마늘을 땅속에 많이 남겼다고 하나둘 자백을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마늘 몇 뿌리는 땅속에 남겼나 봅니다. 뭔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기분을 모두 느낍니다. 너도 잘못하고 나도 잘못했지만 그래서 모두의 잘못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모두가 잘못한 게 돼버렸습니다. 개운치 않는 기분을 모두 느꼈습니다. 양파를 뽑을 때도 주의할 일이 있었습니다. 양파를 함부로 던지다가 양파에 상처를 내면 상품 가치가 떨어집니다. 좀 귀찮더라도 손으로 플라스틱 박스에 양파를 담아야 합니다. 귀찮기도 하지만 플라스틱에 모서리에만 부딪히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생각에-자신의 능력을 너무 믿고 양파를 툭툭 던지는 학생이 더러 있습니다. 어디선가 잔소리가 들립니다. “양파, 던지지 마라.” 학생들 마음속에 어느새 농사꾼의 마음이 조금 자랐나 봅니다. 그 양파 밭 참 넓었습니다. 그리고 땅속엔 양파가 많았습니다. 보리수도 땄습니다. 보리수, 못 보던 게 아닌데 그 이름이 보리수라는 걸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 먹는 ‘뻘똥’이란 열매와 맛이 비슷합니다(보리수도 열매가 작지만 뻘똥은 열매가 훨씬 작습니다). 아마 같은 종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보리수를 따면서 먹기도 많이 먹었습니다. 한 알 한 알 먹는 것보다 한 움큼씩 입에 털어 넣는 게 더 맛있다는 걸 학생들을 잘 모르더군요. 저도 많이 먹었습니다. 옛날 야생에서 자라던 뻘똥을 따 먹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보리수 열매 던지기는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학생들이 온전한 농사꾼은 아니었습니다. 끼니의 절반은 우리가 해결했습니다. 밥은 절반 이상 실패했습니다. 물이 너무 모자라거나 너무 많았습니다. 스무 명 가까운 대식구(?)의 밥을 해보는 건 처음이라 그랬나 봅니다. 그래도 먹어야지 어쩝니까? 새로운 메뉴는 만드는 사람에게도 먹는 사람에게도 도전이었습니다. 잡초도 뽑았습니다. 마을회관 어르신들 찾아뵙기도 했습니다. 밤늦게(불과 8~9시쯤이었는데) 시끄럽다고 군다고 욕을 듣기도 했습니다. 마을회관에 계시던 동네 어르신들과 우리 학생들은 서로 겸연쩍어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은 낮게 다시 갔습니다. 경운기도 타고, 트럭도 탔습니다. 다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잊히지 않는 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한낮 방에서 저는 쉬고 있었습니다. 거실에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거실에 TV 한 대가 있었습니다. 일을 못 하는 시간, 학생들도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같으면 보지 않은 TV를 봅니다. 이 채널 저 채널 넘기다가 오래된 영화도 보았을 것이고, 예능 프로그램도 보았겠지요. 그 날은 어린이채널에 꽂혔나 봅니다. 거실에 자기 편할 대로 널브러져서 자기 편할 대로 웃습니다. 어린이프로의 유치함이 하는 주는 편안함이 있었나 봅니다. 그 웃음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그 웃음소리가 양파 같았고, 마늘 같았고, 보리수 열매 같았습니다. 미숫가루 목 넘어가는 소리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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