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의 시작이 고민이었습니다. 1학기는 많은 것이 새로웠습니다. 교사와 학생의 만남도 새로웠고, 학생과 학생의 만남도 새로웠습니다. 낯선 교실과의 만남도 새로웠습니다. 무엇보다 모두 새로운 마음이었습니다. 그 새로움만으로 어느 정도의 의미는 채울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학생들이 10년째 받아왔던 수업마저 새로웠습니다. 교과서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학기는 그 새로움이 사라지기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거기다 일반 고등학교보다 2주쯤 긴 1학기였습니다. 학생들이 에너지를 한 학기 동안 많이 쏟기도 했습니다. 방학마저 3주 남짓이었습니다. 개학이 다른 학교보다 좀 늦긴 했지만 1학기 시작과 같은 새로움은 없고, 한 학기 동안의 피로는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입니다. 학교를 시작할 때부터 2학기를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리산둘레길처럼 힘들어도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편안하게 시작해도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새로울 수 있다면 새로운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의 느낌도 곁들이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도 했습니다. 제 생각엔 풍물을 배우는 게 딱이었습니다. 지리산둘레길처럼 힘들지는 않지만 북과 장구를 들고 뛰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삼시세끼 밥은 전수관에서 해결이 됩니다(적당히 편합니다). 전수관의 잠자리도 적당히 불편하리라 생각했습니다(적당히 불편합니다). 시골이라면 시골이라 할 수 있는 곳의 시골살이도 괜찮겠거니 여겼습니다. 4박 5일 풍물굿 한 판을 다 배우면 성취감도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느낌이 묘합니다. 학생들이 너무 힘들어합니다. 좀 귀찮아한다는 느낌도 듭니다. 숙소에서 종종 나타나는 벌레를 싫어해도 너무 싫어합니다. 북과 장구에 꽹과리까지 너무 낯설어합니다. 징은 가락을 외우는데 머리는 덜 써도 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거워집니다. 여행의 느낌보다는 수련원에 왔다고 느끼는 모양새입니다. 배우는 재미는 학생들보다 선생님들이 더 느낍니다. 제가 잘 아는 풍물 선생님들입니다. 오래전부터 제게도 선생님들이신 분들입니다. 학생들 풍물캠프도 십수 년째 꾸려 오신 분들입니다. 제가 당황해서인지 풍물 선생님들도 좀 당황하신 듯 보입니다. 제가 누구의 눈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기분입니다. 그럭저럭 각종 풍물캠프를 스무 번은 들어왔을 것인데 몸도 마음도 이번이 제일 불편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들어온 풍물캠프도 몇 번 있었는데 제가 학생들 옆에서 어떤 역할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거기다 학생들 사이의 크고 작은 갈등도 몇 번 있었습니다. 제게도 여름방학은 짧았던지 몸이 피곤했고, 안 그래도 좁은 마음에 여유가 더 없었습니다. 뭔가 맨송맨송한 4박 5일이었습니다. 왠지 찜찜하고 미안한 4박 5일이었습니다. 일단 무엇보다 제가 생각하던 4박 5일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날, 15분 조금 안 되는 풍물굿 공연도 잘 마무리했습니다. 교육청에서 영상 촬영까지 했습니다. 4박 5일 동안 밥도 그럭저럭 맛있게 먹었습니다. 학생들도 배운 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편치가 않았습니다. 끝나지 않은 더위 탓은 아니었습니다. 크게 뒷말은 없었지만 함안화천농악전수관에서의 4박 5일을 다시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게 정말 찜찜하고 미안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변한 탓도 있겠지요? 요즘 학교에서 풍물반이 운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초등학교는 그나마 좀 낫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풍물반은 희귀합니다. 북과 장구와 꽹과리가 학생들에겐 너무 낯설지 않았나 싶습니다. 힙합과 북의 거리, 랩과 장구의 거리, 아이돌과 꽹과리의 거리는 멀어도 너무 멀었나 봅니다. 징의 징징거림은 너무 오래되어 잊힌 흥이었나 봅니다. 제가 풍물을 그 사이 많이 쉬기도 했습니다(제 흥도 떨어진 것이지요). 아련한 추억만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이렇게 변해버린 세월 탓을 해 봤지만 그래도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더 생각해 봅니다. 너무 많은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많이 경험해 본 것이 오히려 독이 됐습니다. 2학기의 시작을 다른 선생님들과도 충분히 얘길 하지 못했습니다. 학생들과의 소통도 별로 없었습니다.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제 소통의 의지가 정말 부족했고, 잘 되겠거니 쉽게 생각했습니다. 하다못해 풍물 공연 영상이라도 몇 편 보여 줬어야 했습니다. 1학기 성장발표회 때 풍물캠프 강사 선생님들의 공연을 넣을 계획이었지만 발표회 공간의 소음 문제 때문에 무산된 것도 운이 나빴습니다. 학생들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멋진 풍물 공연을 눈앞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저처럼 음악적 감각이 둔한 사람이 느꼈던 전율을 전수관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미리 느꼈다면 학생들은 좀 더 신나게 풍물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풍물 가락이 얼마나 흥겹고 신나는지를 느끼게 하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나 큽니다. 문제는 저의 타성이었습니다.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타성이 젖지 말 것. 그리고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 것. 창원자유학교는 타성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순간도 쉽게 굴러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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